좋은 말

검사 임은정

단디1969 2022. 9. 17. 17:17

[알릴레오 북's 72회] 임은정은 멈추지 않지! / 계속 가보겠습니다 - 임은정 편

 

1
상명하복이 지배하는 조폭과
우리 검찰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우리에게 상명하복에 우선하는
'정의로서의 법과 원칙'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검사 개개인이
고유의 법적 양심에 따라
'정의로서의 법과 원칙'을 고민하고
상급자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때,

상급자가 끝내 불의한 지시를
거두지 않으면
최소한 그 지시를 거부하고
불의에 가담하지 않을 때,

진실로 검사가 검사일 수 있고,
검찰이 검찰로서 자리매깁합니다.

 

 


2
중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배달 자전거로 등하교했습니다.
사춘기 시절 가난을 들키는 게
너무 창피하면서도, 
지각을 피하려고
아침마다 자전거 뒤에 올라탔지요.

나날이 불어나는 딸과 책가방 무게로
언덕길에서 아버지가 숨차하는 소리를
바람결에 들으면서도, 
아침 단잠이 아쉬워 늦잠을 자다
매번 신세를 지곤 했습니다.

사춘기 갈등이 최고조로 달아오르던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며칠 말 한마디 섞지 않고
걸어서 등하교하던 어느 아침,

아버지가 뒤쫓아와
제 이름은 차마 부르지 못하고
언니 이름을 부르며 타라고 했을 때,
못 이기는 체 자전거 뒤에 올라탔습니다.

익숙한 아버지의 숨소리를 
다시 바람결에 들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를
제 사춘기가 
이제 끝났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3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하여
권력의 채찍에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모진 비바람 속에서
온몸으로 민주주의의 싹을 지켜낸
우리 시대의 거인에게서
그 어두웠던 시대의 상흔을 씻어내며
역사의 한 장을 함께 넘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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