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해병대원이 전하는 한국군의 입장
베트남 중부 추라이에 주둔했던 해병대 청룡부대(제2해병여단)가 미군 비행장이 있던 다낭 방향으로 진격한 건 1967년 12월.
이 과정에서 한 보병소대는 꽝남성 호이안 주변의 한 마을을 지나게 됐다. 3개 분대로 나뉜 40여 명의 소대병력이 마을에 진입할 때 포병대대 사격지휘본부에서 정찰병으로 근무하던 A(72) 씨도 뒤따르고 있었다.
A 씨는 지난 6일, 경기도의 한 도서관에서 CBS노컷뉴스 기자를 만나 "끔찍했던 장면이 생생하다. 언제 생을 마칠지 모르니 꼭 알려야겠다"며 50년 전 기억을 전했다. 마을로 진입한 소속 부대가 일부 주민을 총살했는데 이 가운데 민간인이 섞여 있었다는 얘기였다.
... (전략) 해병 몇 명이 쓰러진다. 동시에 기관총 소리가 가까이서 고막을 찢는다. 불과 몇십 미터 옆 마을에서 기관총알이 계속 날아온다. 방탄복과 철모로 무장했지만 100m 이내에서는 총탄이 관통한다. 즉사다. 농가에 숨어있는 악랄한 적들은 그걸 안다. 숲속에 숨어 있으면 대포로 제거하고 들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겠지만 몇십m 민가에서 농민이 순식간에 작전개시, 베트콩들의 수법이다. 언제나 그렇다. 우리도 그걸 잘 알고 있다. 무작정 나가는 게 아니라 철저한 준비를 한다. 이번 마을은 주민도 적고 여러 번 수색했던 지역이다. 마을 주민들도 안면이 있다. 농사일하다가 가까이 지나칠 때 감추어둔 소형 기관총을 발사한다. 숨는 곳은 민가. 해병은 몇 명 희생당하고 나서 작전개시. 처음부터 농민을 죽일 수는 없다. 구별이 안 되므로. 양민 보호가 우선이었다.
간신히 마을을 점령하고 모든 주민을 공터에 모이게 한다. 좀 큰 작전은 월남정규군에서 파견된 통역관이 온다. 주민은 많아야 10~20명 정도. 누가 보았느냐. 총은 어디에 숨겼느냐. 베트콩들은 가장 먼저 총을 숨긴다. 자기 목숨보다 먼저. 세뇌된 주민들은 아무 말도 안 한다. 죽인다 위협해도 태연. 만약 말하면 자기 가족 모두 몰살당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동자로 몇 명 추려내어 사살한다. 증거는 없다. 이에 대해서 비난한다면 그대로 받겠다. 나도 아무 말 안 하겠다.
전쟁이 이렇고 이런 것이 전투란 말인가. 저들은 누구고 나는 누구인가. 철천지원수 사이도 아닌데 무슨 연유로 죽고 죽여야만 하는가. 해 떨어지기 전에 부대로 돌아가야 한다. 어두어지면 적들의 세상으로 둔갑하니까.
산화한 전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대한의 해병이었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훈련을 받은 사냥개였다. 사냥개는 양을 해치지 않는다. 호랑이나 사자를 물어뜯는다. 군인이 전쟁터에서 죽는 건 명예로운 일이다. 한 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다. 안녕.
'정치참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통령별 지표 변화 (0) | 2017.12.30 |
---|---|
19대 대선 결과 (0) | 2017.12.30 |
18대 대선 박근혜 공보 (0) | 2017.12.24 |
18대 대선 박근혜 후보 공략 (0) | 2017.12.24 |
18대 대선 결과 (0) | 2017.12.24 |